엄마 어디 가?
작성일 202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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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어디 가?>

 

“이제 우리 컸으니까 일하러 다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네 식구가 모여 저녁을 먹고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큰 아이였는지 작은 아이였는지 모르겠지만, 애들 중 하나가 엄마는 왜 일 안하냐는 물음에 헛헛한 실소를 하며 엄마의 지난 인생살이를 말해줬다.“오빠 하나일 때는 어떻게든 일을 했지.... 너 낳고 나서 이제는 가족을 돌보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싶었어. 그렇게 너희들 돌보고 키우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시간이 흘렀네.” 위로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공감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나보다. 아니면 동의를 구하고 싶었는지도. 그런데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 된 딸에게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천진난만한 소리를 듣게 되다니. 곱씹을수록 배신감이 느껴지는 것도....

 

그러던 어느 여름날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이웃 언니의 말 한마디가 이렇게 내 삶을 바꿔놓았다. “자기는 여기서 있기 아깝다. 나가서 일을 해, 이제 애들도 다 컸는데, 무보수 봉사만 하지 말고, 당장 돈 받는 일 하면서 재능을 펼쳐봐.” 당시 동네 작은 도서관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었다.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들 쫓아다니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던 무렵 동네마다 작은 도서관이 생겨났다. 아이들 데리고 책 보러 종종 가다 보니 친구도 사귀고 하릴없이 시간 때우기에도 딱 좋은 장소였다. 수천 세대 아파트 단지가 새로 들어서 서먹하고 정 없어 보이는 신생 마을에서 작은 도서관을 매개로 또래 엄마들이 하나, 둘 모였고, 어느새 아이들 교육과 교류의 장이 된 이 도서관에서 나도 모르게 폭넓게 활동을 하게 되었다. 나처럼 육아를 위해 회사를 그만둔 많은 엄마들을 보면서 그녀들이 배운 시간과 노력이 아깝고, 능력을 펼칠 수 있는 활동무대가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누구 엄마는 퀼트, 저기 엄마는 한자, 요기 엄마는 오카리나 하는 식으로 엄마 강사들이 실력을 뽐낼 자리를 마련하고 자원봉사자를 모으는 역할을 하면서 지역활동을 해왔었다.

 

8년 넘게 회사생활을 했음에도 아이를 키우는 동안 경력은 단절이 되고, 봉사활동 같은 건 경력으로 쳐주지 않는 걸 보면서 점점 자신감이 없어졌을 때, 사회에 나가서 써먹을 수 있는 총알로 장전한 것이 자격증 준비였다. 컴활과 직업상담사. 두 가지 자격증 취득에 6개월이 걸렸고, 결국 준비를 끝냈다. 그러나 현실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이가 걸리고, 경력이 걸리고, 내가 쌓아온 걸 인정해주는 곳이 나타나지 않았다. 더구나 코로나라는 변수가 사회 활동하기를 더 두렵게 만들고 있었다.

 

딱 2개월이라도 경력을 쌓고자 들어간 고용센터에서 비슷한 또래부터 이제 막 사회에 발 내딛는 청년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다시 시작하는 돈벌이 생활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10여 년 전 하던 일과도 전혀 다른 일이었고, 난 더 이상 팀장이 아니었으며, 이제 막 새로운 일에 내던져진 중년 여성일 뿐이었다. 이것도 저것도 익숙하지 않은 프로세스와 몇 번을 들어도 애매하기만 한 업무 지시, 그리고 무엇보다 수없이 밀려드는 민원인들을 상대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에이, 그냥 다 박차고 나와 나도 저 민원인 무리에 합류하고 싶은 적이 하루에도 수백 번이었다.

 

그래도 사회생활이란 게 그저 돈만 벌기 위한 활동의 연속은 아니었다. 새로 만난 사람들과의 교류로 유용한 정보도 은근히 들을 수 있었다. 그 중 알게 된 정보로 올 3월부터 서울시 뉴딜 사업 중 여성일자리메이커 사업에 지원하여 여성인력개발센터에 가서 일을 하게 되었다. 홍보에서부터 교육 운영 및 평가까지 정말 다양하게 일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뉴딜 일자리는 서울시 소속이면서 여성센터로 파견 계약직원과 같아 일과 책임의 경계가 모호하고, 직원의 병가로 업무가 지나치게 가중되어 힘든 점이 많았다. 그런 와중에 코로나로 인한 기존 직원들의 부재를 메워야 하는 상황까지. 웬만해서는 계약 종료 시까지 견뎌보려고 했지만, 더 늦기 전에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는 곳에 가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동료 뉴딜 선생의 말을 빌자면 우리 나이에는 기간제 계약직이나 대체인력으로 경력을 쌓을 수밖에 없단다. 계약직 근로자를 원하는 회사 측에게만 유리한 조건이라기보다는 일부분 우리네 경력 단절 여성이 현실적인 목표 중 하나로 삼을만한 조건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완전 신입도 아니고 과중한 노무에 시달리며 억지로 근로관계를 유지해야 할 의무도 덜해 보여서 근로자 입장에서도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아 보였다.

 

지인이 대체인력뱅크로부터 받은 구인정보라며 한국상하수도협회 계약직원 구인공고를 알려주었다. 한국상하수도협회는 집에서도 더 가깝고, 내가 가진 학력과 자격증 내용으로 사람을 채용하고 있어서 놀라웠고, 나와의 매치율이 높아 가능성도 커 보였다. 육아휴직에 들어가는 직원의 대체인력을 구인하는 것을 보고 업무 내용이 어떤지 홈페이지 내용을 살펴보았다. 물론 지원서를 넣기 전에는 상수도와 하수도의 차이나 이런 분야가 있는지조차 몰랐는데, 알고 보니 우리 생활에 정말 필요한 물에 관한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필요기관이었던 것이다.

 

대체인력뱅크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대체인력을 뽑는 기관이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다. 3개월이든 1년이든 육아나 가족 돌봄으로 잠시 쉬다가 다니던 직장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참 좋은 제도인 것 같았다. 내가 한창 나이에 프로페셔널한 직장인으로 활발히 활동하다 일과 육아 사이에서 고민해야 했던 그 시절에도 이런 곳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서류전형을 통과하고 면접을 본 결과는 합격! 곧바로 다니던 회사를 정리하고 배치된 부서는 육아휴직 대체인력 자리는 아니었지만, 기간제 계약직으로 가장 시급한 부서에 배치되어 벌써 3개월째 정신없이 일하고 있다. 새로운 자격증 제도에서 자격증 교부 업무를 맡고 있고, 고용센터에서 2개월간 부지런히 익히고 해온 업무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이곳 역시 바쁘긴 마찬가지지만, 잘하고 있다는 피드백을 받으며 일하다 보니 다행이라 생각한다.

 

대체인력뱅크를 통해 나처럼 경력이 단절된 사람도, 경력을 유지하고 싶은 단기 휴직자들도 모두가 삶의 시간을 행복하게 만들어갈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