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서 빛으로
작성일 2026-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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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에서 지낸 지 7개월이 지났다. 사기를 당해 모든 돈을 잃었고 매일 우울증 약을 복용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희망이 없어 보였다. 1주일에 한 번 교회에 나갈 뿐이었다. 각종 물류센터, 공장에서 일하며 모은 돈을 사기당하고 나니 용기가 사라졌다. 바깥에 나가지 않고 늘 집에만 있었다. 심리상담사로부터 기초생활 수급 신청을 제안받았고 그렇게 사회에서의 내 모습은 사라져 갔다.

 

그때 사람인에서 포지션 제안이 왔다. 한경국립대학교 교육 속기사 채용 공고였다. 나도 모르게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담당자의 전화가 왔다. 2016년 10월에 취득한 한글 속기 2급 자격증이 있었다. 9년간 실무 경험이 없어서 주저했다. 그때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담당자의 격려가 있었다. “아직 젊으신데 일을 계속하시는 게 낫죠.”라고 했다. 그래…. 아직 난 젊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에 걸쳐서 서류 작성을 했다.

 

책을 쓰며 인생을 정리해본 경험이 있어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처음으로 대학교 졸업장과 성적 증명서도 함께 제출하였다. 작은 지방의 사립대학교 졸업장이 필요하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짧은 계약 기간이 마음에 걸렸지만 노력해서 취득한 자격증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기뻤다.

 

집에만 있다가 서류 준비, 면접 준비를 하면서 바깥 출입이 잦아졌다. 서류가 통과되어 면접 전날 미용실에 가서 이런 사실을 알렸더니 미용사도 함께 기뻐해 주었다. 처음 가보는 대학교라 면접이 시작되기 3시간 전에 출발했다. 원래 면접 장소는 안성 캠퍼스였는데 착각을 해서 평택 캠퍼스로 향했다. 시간이 많이 남아 캠퍼스를 둘러보다가 직원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면접 장소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니 지도에 있는 곳은 안성 캠퍼스라고 했다.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갔더니 정시보다 30분 전에 도착했다. 3:1 면접이었는데 여태껏 본 면접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면접관은 나에게 존댓말을 사용했고 그 덕분인지 편하게 면접을 볼 수 있었다.

 

결과는 보름 후에 나왔고 이메일로 합격이라는 통보와 함께 공무원 신체검사서를 보내야 한다고 했고 임용 계약서도 첨부되어 있었다. 충무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고 주변의 도장집을 방문해서 도장을 만들었는데 주인이 취업한 사실을 알고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편의점에 가서 인주를 구매하니 주변의 아주머니가 웃으며 취업이 되었냐고 말씀하셨다. 학교 측에서 요구한 모든 서류를 준비해서 보냈고 출근일을 기다렸다.

 

근무하게 될 부서는 한경대학교 평택 캠퍼스 장애 학생 지원센터였다. 시간에 맞춰 첫 출근을 했고 센터에는 면접 때 보았던 센터장님이 계셨다. 그곳에는 자리가 마련이 되어 있었고 컴퓨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현장 일만 해왔기 때문에 내 자리가 있다는 게 조금 낯설었다. 첫날에는 업무에 필요한 사항을 간단하게 안내를 받았고 같이 일을 하게 될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센터 내에는 장애 학생을 지원해 주기 위한 속기사와 수어 선생님이 따로 있었다. 학생들은 지원을 받고 싶은 부분에 대해서 신청을 할 수가 있다.

 

9년 동안 속기 연습을 하지 않아 불안한 나머지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는 속기 연습을 열심히 했다. 2025년 10월에 하반기 시험에도 응시했다. 1급 시험에 합격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는지 불합격했다. 하지만 개인 학습 목표가 있어야지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교육 속기사는 속기로 학습 지원해 주는 것뿐만 아니라 보조 업무도 수행했다. 전동 휠체어를 대여해 주는 간단한 보조 업무,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배정받은 장애 학생들을 알아가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학기가 시작되고 짜인 시간표대로 수업을 들어가게 되었다. 속기계와 노트북은 학교 측에서 대여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쉽게 키보드에 손이 가지 않아 강의 도중 녹음해 두고 사무실에서 작업을 하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실시간 속기가 필요한 청각장애 학생 옆에서 수업을 진행할 때도 있었고 수업을 나오지 않을 때는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주로 번문 작업을 했다. 시간이 지나고 비법이 생기니까 속기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공부를 원하는 학생도 있고 그냥 나와 대화하고 싶어 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럴 때면 속기보다는 학생과의 대화에 집중했고 친밀도를 높이는 연습했다. 천안에서 평택까지의 출퇴근길이 고되었지만, 학생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또한 유연근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일주일에 40시간의 업무를 자유롭게 짤 수가 있었다. 수업이 없는 날에는 일찍 퇴근할 수 있고 오전 수업이 없는 날에는 오후에 맞춰서 짤 수 있었다. 또한 한 달에 연가가 5개 주어졌는데 수업이 없는 금요일의 경우에는 연가를 사용해서 3일 휴가를 다녀올 수가 있다는 것도 좋았다. 여태껏 수직적인 근무 환경에서 일해서 자유로운 근무 형태가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니 더 많은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일하는 과정에서 좋은 일은 계속 생겼다. 고시원을 벗어나 새로운 공간으로 이사가 결정되었다. LH주택공사에서 시행하는 긴급 주거주택에 당첨이 되어서 조금 더 넓은 곳으로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짧은 시간에 자립에 필요한 요소들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월급을 받고 필요한 물품을 구매해 보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게임의 아이템도 구입해 보았다.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티켓도 구매했고 만나고 싶었지만 취업하지 못한 상태에서 어두운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피했던 사람들도 만나기 시작했다. 육아휴직대체조교 6개월 계약직으로 발견한 것은 많았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인해 복용했던 약을 끊었고 삶을 더 풍요롭게 꾸려 나갔다. 건강 검진을 받기 위해 공가를 신청했고 건강 상태는 더 좋아졌다. 양안 1.0이었던 시력은 오른쪽 시력이 1.5가 나왔고 몸무게는 8kg 증가했다. 혈압은 낮아졌고 이제는 우는 날보다 웃는 날이 더 많아졌다. 생각지도 못한 변화였다. 또한 맡은 바 책임을 다 했기 때문에 1개월 더 연장 계약을 맺을 수 있게 되었다.

 

일을 하는 것이 즐거웠고 학생들과 만나는 시간은 힘이 되었다. 보상보다는 노력하는 행동이 값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책임을 다하면 결과가 좋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인재채움뱅크의 담당자의 격려로 용기를 내어 취업했고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게 되었다. 그것은 “과거를 정리하고 자립할 용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