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을 메고 닳고 닳은 신발을 신고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여행작가가 되고픈 꿈을 가지고 살던 총기있고 명랑하고 어느 한순간도 반짝임이 사그라든적 없던 20대의 나. 어느덧 뒤돌아보니 그 많던 꿈이 어디로 갔는지 모를 정도로 화장기도 거의 없는 얼굴과 곱고 팽팽한 피부가 사라진 쭈글쭈글한 주름이 가득한 40대 아줌마의 억척스러운 모습으로 출산과 육아의 길을 걷고 있었다. 큰아이가 5학년, 작은아이가 4학년 연년생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 일주일 식단을 정리하고 매일매일을 정성스럽게 삼시세끼를 차려냈다. 대학병원 생활이 잦았던 작은 아이를 위해 경차 한 대를 구입해 수도없이 하루 꼬박 걸려 진료를 받고 오느라 지치기도 했고 그 차로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빠지고서 날 좋을 땐 산으로, 들로, 공원으로, 박물관으로 전국 곳곳을 견학하고 맛있는 엄마표 도시락과 간식을 먹으며 하하호호 최고의 순간, 최애의 시간들을 만들어가며 지금껏 살아왔다.
어느 날 큰아들이 “엄마 이제 나 다 컸는데 이제 스스로 다 해볼게. 엄마, 회사 다녀!” 그때부터 내 가슴은 쿵쾅거렸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엄마.. 아직 너 중학교 들어갈 때 까지는 더 쉴거야. 엄마 나이가 들어가니 회사에서 써줄까마는.. 그래도 이렇게 매일매일 틈나는 대로 엑셀 공부도 하고, 자격증도 내일배움카드로 회계도 따고 있고, 너랑 함께 하는 시간동안 계속 열심히 준비할거야. 걱정마.”
실제로 그랬다. 난 늘 밖으로 달려나가고 싶었고, 출산 직전까지 다녔던 회사에서 중간 관리자로의 경리*회계 경력이 10여 년이 되었어도 다시 돌아갈 때는 기죽지 않고 싶었다. 늘 그리웠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의 팀워크, 퇴사 후에도 그리워 서로 연락하기 바빴던 소중한 시간들.. 켜켜이 쌓여있던 나의 소중한 시간들이 45세 이후에는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건 아닐까? 애써 꿋꿋하게 큰아들을 안심시켜주었지만 해가 갈수록 남편과의 대화에서 나의 우울함과 조급함이 큰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가족회의를 하고도 수개월이 지나고서 마음이 확고해진 것은 사회복지사, 아파트회계1급 등등을 따면서도 육아 이후의 시간을 소중히 보내던 어느날, 모두가 잠든 새벽녘 눈을 떠 차근차근히 지금껏 바쁜 시간을 쪼개어 채워갔던 이력서가 완성되었을 때 였다.
여러차례 마음에 드는 기관 혹은 내 자격요건에 맞는 기업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서너군데 면접을 본 것이 다였다. 올해 1월에는 기관에 잠시 취업이 되어 그간 발현해 보고싶었던 나의 잠재력을 확인해 보기도 하였다. 더더군다나 대체인력으로 짧은 기간이었지마는 큰 회사의 인사총무회계행정을 가장 바쁜 년 초에 마무리 지어야했기에 연말정산, 총무 인사, 각종 세무신고뿐 아니라 국가지방보조금(보탬e,e나라도움)까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업무도 배워가며 찾아가며 일하느라 눈코뜰새없이 야근하며 바쁘게 적응해 나갔다. 퇴사 후에도 한참을 구직 활동을 했지만 역시나 나이가 걸림돌이었다. 젊고 유능한 요즘 친구들이 가득한데 경험과 연륜은 있으나 직장동료들과의 나이대를 고려했을 때 부적격할 것 같다면서 계속 서류전형에서 실패를 거듭했다. 이따금 기회가 온 면접에서도 최종합격은 늘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게 힘 빠지게 올해는 포기해야 할까? 워크넷, 인쿠르트등의 사이트에서 보통의 기업이 내 나이대라도 솔깃할법한 자격을 더 채워서 돌아오는게 좋겠다는 결정을 내린지 며칠 뒤.... 인재채움뱅크에서 “구인업체가 있는데 적격자라서 연락드렸어요!”라는 담당자분의 말을 들었을 때 너무 얼떨떨했고, 출산휴가·육아대체인력이라 15개월이지만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는 말에 최저시급이지만 나의 욕심을 내려놓고 경험과 도전을 쌓아보기로 마음먹고 면접에 임했다. 그간 준비했던 수많은 노력의 결과들이 빛을 보듯, 20명의 면접자 중, 선 면접 후 취업이 확정되면 더는 보지 않을 것이란 면접관의 말씀에 몇날 며칠 면접을 앞두고 기업조사에 들어갔다. 수없이 외웠고, 동향을 파악하고, 가장 중요한 회사재정과 분위기를 살폈다.
그렇게 입사한지 11일이 지났고 벌써 많은 관계자분들과 인수인계담당자, 기관장님께 신임을 얻으며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누군가보다 앞서기 위해 욕심을 가지고 일을 하기보다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동료들과 함께 발을 맞추어 뛰며, 가장 낮은 곳에 자리하여 나이를 운운하지 않고 나이가 적은 분들에게도 예의를 지키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업무를 배우고 적고 복기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주말 맞이하는 금요일 퇴근길에도 집에 가면 “대리님 꼭!쉬세요! 아무것도 하지말고 쉬셔야해요”라는 다정한 전임자분의 응원에도 집으로 돌아와 배운 업무를 확실히 내 것으로 만들어 가면서 더없는 성취감을 맛보고 있다. 회사업무와 업무에 더 필요한 엑셀공부, 요즘의 시대에 맞게 캔바로 홍보용 지류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구글 슬라이드로 ppt자료를 만들어 공유하는 학습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곤 남편은 이제껏 식사를 제손으로 차려본 것이 손꼽히지만 요리 공부에 여념이 없다. 아이들이 아플땐 이제 남편이 급작스럽게 휴가를 내어 소아과를 다녀와주고 퇴근 후 저녁식사와 집안 일을 도맡아 내 걱정을 덜어준다. “내가 안정적으로 자리할수 있도록 네가 고생했으니 이제 네가 그토록 하고싶던 직장생활과 제2의 커리어를 시작해봐! 너무 멋있다 내 와이프!”
여러 구인사이트에서 수없이 쓴 고배주를 마셨던 나에게 한줄기 빛으로 다가와 제2의 커리어의 첫걸음을 내딛을수 있도록 함께 해주신 인재채움뱅크와 상담사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모래알처럼 수많은 구직자중에 적격자라는 표현으로 희망을 실어주고 보다 면접에 잘 대처할수있도록 이력서를 꼼꼼히 수정하여 지도해주시고 많은 신경을 써주신 상담사님께 열심히 일해서 좋은 결과로 기업에서 평가받으실 수 있도록 누가 되지않는 최선으로 보답해드릴 것이다.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로 하루하루 채워나가면서 100세 시대에 세상에 쓰여질 수 있는 가치있는 반짝거림으로 제2의 커리어를 시작해 나가려 한다. 정말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